토요일 저녁인데도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거리는 텅 비어있습니다. 술집과 클럽은 비었고, 건물 밖에는 의자들이 덩그러니 놓였으며, 빈 식당 안에는 테이블 위에 의자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한쪽 거리 위 전깃줄에 걸려 있는 전구들이 보라색에서 파랑, 초록, 노랑, 분홍, 빨강 그리고 다시 보라색으로 느리게 변하고 있습니다.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조명은 마치 누가 실수로 전원을 내리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이 화려한 불빛은 다른 쪽에 서 있는 경찰 두 명의 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들은 두 골목이 만나는 지점을 차단한 주황색 테이프 앞에 서 있습니다. 인도에는 쓰레기 조각들이 뒹굴다가 골목 한쪽에 쌓입니다. 거리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어둑한 탓에 사람들 표정이 잘 안 보이고 그래서 더욱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저녁 6시, 일주일 전 핼러윈 파티에 가던 한 사람이 처음으로 신고 전화를 걸었던 시간입니다. 나는 바이올린을 가방에서 꺼내 연주를 시작합니다. 제 옆에서는 빌 목사와 그의 아내 그레이스가 노래를 부릅니다. 많은 청중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바이올린을 켜며 일주일 전 토요일, 이 골목에 자리 잡은 술집과 클럽을 가득 채웠던 제 또래 친구들을 생각해 봅니다. 156명의 아까운 생명이 이 길에서 목숨을 잃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핼러윈을 즐기려고 나왔다가 마치 불빛을 밝히던 전등이 갑자기 꺼지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음악은 그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 이곳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면서 끔찍한 비극의 장소를 방문하고 다시 방문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벨기에 학생 노나는 자기가 즐겨 찾던 술집 와이키키 파라다이스 옆에 서 있었습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었어요. 그러다가 오늘 다시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나는 내 바이올린 가방이 놓여있는 단을 가리키며 “거리가 너무 꽉 차서 사람들이 핼러윈 분장 테이블을 이곳에 끌어 올렸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난간에 서 있는 칠해진 대나무들을 만지고 친구를 몸으로 감싸면서 그 대나무들을 붙잡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자 노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하다가는 누가 죽을 수도 있겠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수많은 이가 죽었습니다.
이태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관련 동영상을 살펴봤고 이 글을 쓰면서 좀 더 봤습니다. 속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그 텅 빈 골목이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찬 모습이 마치 사실인 양 떠올랐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실내외를 가득 채우고, 한쪽 벽에서 다른 쪽 벽까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그 모습. 어떤 사람은 넘어져 숨지고, 어떤 사람은 선 채로 숨을 쉬지 못해 숨졌습니다. 그날의 파티는 그렇게 끝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피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무슨 말로 제 감정을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곳에 다시 돌아가 희생자를 향한 제 슬픔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싶습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나의 또래 친구들을 위해서 곡을 연주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남은 사람들, 한 명이라도 더 보호하고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그들의 친구들과 응급 구조대를 위로하는 곡을 연주하고 싶습니다.
토요일, 텅 빈 술집들 앞에서 제가 바이올린을 켰을 때 몇몇 사람들이 음악을 자신의 영혼에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들은 빌과 그레이스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음악이 끝나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 데 어떤 사람 — 나중에 그가 유명한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이 무슨 노래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수준의 한국말로 “평화, 강 같은 평화”에 관한 노래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 성가를 몰랐지만 “위로가 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평화를 찾는 것이 불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슬픔은 때때로 군중 속에 짓눌려 생명을 빼앗기는 거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그런 죽음의 장소에서도 파도를 잠잠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비디오는 수천 명에게 공유가 됐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주말 직후 영월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사는 빌 목사와 아내 그레이스는 이태원에 머물며 빌 그래함전도협회, 사마리안퍼스와 협력해 ‘재난 지역 긴급 사목팀’의 일원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했습니다. 우는 이에게 티슈를 건네주고 안아주고 기도하며 상담하는 일 외에도 그들은 하염없이 노래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것으로 위안을 해주었습니다.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빌과 그레이스는 그때 만났던 슬퍼하는 영혼들을 계속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2022. 11. 8
(사진 제공: 빌 와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