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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d and small wave

    황제에게 보낸 편지

    초대 교회 이야기2

    - 에버하르트 아놀드

    2013년 03월 15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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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준

      타키투스, 요세푸스 그리고 플리니를 참조 문언으로 제시하는 중에 이 사이트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초기 신앙 생활을 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재화가 요구될 때 거절하지 말고 내 줄 것을 서약하였다는 것이 현 자본주의 영향 아래의 교회와 분명한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 소아시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가 로마 황제에게 보낸 이 서신은 당시 빠른 속도로 번져가던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의 정치적 입장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실재를 반증해 주는 중요한 고대 자료중 하나인 이 서신을 통해 당시 초대 교회가 겪었을 핍박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가이어스 플리니(Gaius Pliny, 소아시아 총독)가 로마 황제 트라얀(Trajan)에게:

    “관례적으로 저는 의문이 가는 모든 것을 폐하께 보고 드립니다. 저의 무지와 불확실함을 지도할 분이 황제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전 아직까지 크리스천들과 관련된 재판에 배석한 경험이 없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로 그들을 처벌해야 할지 혹은 수사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들의 연령을 고려해야 할지 아니면 어린 자들이나 장성한 자들이나 동일하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도 좀처럼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죄를 뉘우치는 자들을 사면해 줘야 할지, 혹은 한번 크리스천이었던 자라면 더 이상 크리스천이기를 포기한다고 해도 사면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인지, 결국에는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범죄 사실이 없어도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직 그 이름(크리스천)과 관련된 범법 행위만 처벌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편, 전 크리스천이라고 고발된 자들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절차를 따랐습니다. 먼저 그들에게 크리스천인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들이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하면 두세 번 거듭해서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게다가 사형 선고의 위협까지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크리스천임을 밝히는 자는 사형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들이 고백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완고함과 강퍅한 고집만으로도 처벌받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외에도 그와 같은 광기를 보여준 몇몇 로마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전 그들을 로마로 보내라고 명했습니다. 종종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처럼, 이 범죄는 점점 더 광범위하게 번져나갔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몇몇 사건이 있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고발하며 명단을 첨부한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전 현재 혹은 과거 한때 크리스천이었음을 부인하는 자들이, 만일 제가 제시한 대로 우리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면 - 즉, 그들이 폐하의 상 앞에 향과 포도주(이전에 전 이와 같은 목적으로 다른 신상들과 함께 이것들을 가져오라고 명했었습니다.)를 올리고 그것에 더해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를 욕한다면 - 그들을 석방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임을 자청하는 자들을 억지로 시켜서라도 이와 같이 하도록 만들 수 없다는 것이 그저 비통할 따름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처음엔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했다가 곧 태도를 바꿔 한 때 크리스천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어떤 이는 3년 전 또 다른 이는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어떤 이는 20여 년 전에 그것에서 돌아섰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폐하의 상과 다른 신들의 상 앞에 제사를 드리며 그리스도를 저주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은 단지 특정한 날 해뜨기 전에 서로 번갈아 가며 모임을 가진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마치 신처럼 찬양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맹세함으로써 자신들의 그룹을 결집시켰습니다. 이는 어떤 범죄 행위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반대로, 절도나 강도 그리고 간통을 하지 말 것을 그리고 약속을 지키고 맡겨진 재화가 요구될 때 거절하지 말고 내어줄 것을 서약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임 후 그들은 일단 헤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평범한 식사를 함께 나누기 위해 재차 모이는 것이 그들의 관례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만 두었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제가 폐하의 명령을 따라 그와 같이 폐쇄적인 모임을 금하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 일 후에 저는 무엇이 과연 진실인가 더 알아내는 것이 더욱 더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시중드는 소녀라고 불리는 두 피의자에게 고문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그리고 거대한 미신 외에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수사를 연기하고 이제 폐하께 조언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 문제는 그와 같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막대한 수만 놓고 봐도 분명히 자문을 구해야 할 문제라고 전 생각합니다. 모든 연령층과 각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미 그와 같은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똑 같은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이 미신은 단지 도시 뿐 아니라 지방의 여러 곳까지 전염병처럼 퍼졌습니다. 그럼에도 전 아직 이 일을 억제하고 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로마 황제 트라얀이 소아시아 총독 가이어스 플리니에게 보낸 답장:

    “플리니 총독, 대개의 경우 가혹한 법을 성급히 제정할 수는 없기에, 총독은 그대 앞에 크리스천이라고 불려온 자들을 심문하는 데 있어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그들을 잡기 위해 수색을 명하지는 마시오. 잡혀온 자들이 유죄임이 입증되면 반드시 처벌하시오. 하지만 누구든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부인하고 우리의 신들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면 그들의 과거가 아무리 의심스러울지라도 석방하도록 하시오. 익명으로 고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받아들이지 마시오. 그것으로 인해 아주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고 또 요즘 시대에 좀처럼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오.”

    Correspondence, Trajan with Pliny, Letters X.96 –97, A.D. 112.

    fish shape drawn in sandy beach
    지은이 EberhardArnold2 에버하르트 아놀드

    에버하르트 아놀드(1883-1935)는 브레슬라우, 할레, 에어랑엔에서 신학, 철학, 교육을 공부했고, 190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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