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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

    The Beatitudes provide a path toward a deeper happiness than the pleasure of gratified desire.

    - 에버하르트 아놀드

    2012년 07월 1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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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그의 친구들과 귀 기울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나라의 질서와 그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날처럼 그 당시의 사람들도 이 새로운 질서가 자신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치•경제적 구조에까지 도래하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얘기한 정의의 새 나라를 갈망 했습니다. 그들은 이 새로운 정의가 사랑과 은혜의 법 위 에 세워진 사회적 정의여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 의 마음 안에서 정의와 은혜는 서로 너무 가깝기 때문에 마치 하나처럼 움직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정의의 본질과 실제적인 결과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자기들만 의롭다고 생각하는 종교적이고 위선적인 사람들의 도덕적인 정의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본성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거룩한 생명의 법칙에 순응하며 우리 안에서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살아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윤리적 명령을 주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 본성을 분명히 분별하셨습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이런 본성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므로 복이 있습니다. 다가올 나라가 저희 것이며 또,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위로를 받고 배부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존재 속에서 우리는 장래 나라의 영이 지닌 모든 특징들의 통합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유기적인 전체 구성을 무시하고 어느 한 문장을 뽑아서 단독으로 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누구라도 만약 비폭력이나 마음의 순결함, 그리고 다른 어떤 도덕적 혹은 정치적 요구를 단독으로 떼어내 어떤 새로운 것을 주장한다면 그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순결함이나 평화를 위한 단호한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나무가 심겨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변화는 삶의 모든 영역으로 퍼집니다. 삶의 한 영역에서만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은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팔복은 따로따로 떼어질 수 없습니다. 팔복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의 심장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혈관들을 해 부해서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는 없는 심장 말입니다. 이 때문에 팔복은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약속으로 시작해서 똑같은 약속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자들은 가난하고 궁핍하고 갈망하고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들입니다. 동시에 사랑이라는 재산과 평화를 이루는 힘, 그리고 모든 저항을 극복하는 승리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들의 본질은 순결함과 일편단심의 마음입니다. 그 속에서 이들은 하나님을 봅니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본질을 발견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고통을 짊어집니다. 그리고 성령 앞에서 자신들이 거지라는 것을 압니다. 이들은 자신 안에는 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의를 대망하며 성령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자들입니다. 풍족함이 주는 행복도 욕망의 실현도 그들의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더 깊은 행복이 열린 눈과 열린 마음 앞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이 가난하고 공허하고 배고프고 목마르다고 느끼는 곳에 하나님과 그가 주는 풍요를 향한 열린 마음이 있는 것 입니다. 자신의 궁핍함과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아는 것이 참된 종교체험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과 하나이면서도 언제나 하 나님을 갈망하는 것, 마음은 확고하지만 영혼은 약한 것, 하 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불의의 고난, 이처럼 서로 대조되는 요소들이 늘 함께 있습니다. 종교적인 만족과 도덕적인 자기만족이 있는 곳, 정치적인 업적들이나 선한 일들로 자기 의(self-righteousness)가 드러나는 곳, 누구든지 부유하고 만족을 느끼는 곳, 이런 곳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친교에서 오는 행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정의를 믿으며 그 나라의 행복을 아는 사람들은 제자도의 단순한 길을 걷는 데 있어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 불의 때문에 당하는 고 통과 상처를 알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언제나 성령님과 그 분이 예언하신 완전한 사랑의 정의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모든 인류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의 의가 이루어지리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이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위로를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난한 동시에 부유합니다. 이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실패를 거듭하기는 하지만 삶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가난과 고통,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정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고난 없이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대적자의 훼방이 폭풍우처럼 자신에게 쏟아질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화평케 하는 자로서 반대를 극복하며 사랑으로 적개심을 이겨냅니다. 팔복의 사람들은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평안을 느낍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 들을 헤어날 수 없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어떠한 세력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서 그들을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9).

    이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비밀이 있는데 그 것은 그들이 어디서든지 동일한 하나님의 씨앗을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통으로 주저앉는 곳, 사람들 이 자신의 가난함을 느끼고 성령님을 사모하는 곳, 그곳에 서 이들은 인간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또한 사회 정의를 향한 혁명적인 갈망이 일어나는 곳, 전쟁과 대량 학살을 반대하는 항의가 울려 퍼지는 곳, 사람들이 사회주의와 평화주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곳, 그리고 마음의 순결과 자비가 있는 곳, 이러한 곳에서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며 하늘의 기쁨을 기대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길 말고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내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가난함을 시인할 때만 우리는 이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가져오는 정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될 때 그 외 다른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무의미하게 됩니다. 바로 이 주림과 목마름이 하나님께서 채우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비울 수 있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지은이 EberhardArnold2 에버하르트 아놀드

    에버하르트 아놀드(1883-1935)는 브레슬라우, 할레, 에어랑엔에서 신학, 철학, 교육을 공부했고, 190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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