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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out2000년 한국의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그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예수원으로 향하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예수원은 1965년 미국인 선교사 아처와 제인 토레이 부부가 태백에 시작한 기독교 공동체이다. 나는 그때 막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승리의 기쁨보다는 입에 쓴맛만 느끼고 있었다. 스물여섯이었던 나는 경쟁과 배움의 기쁨을 빼앗은 공부 부담에 질려 있었다. 열정적으로 학생운동도 해봤지만 만족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단 집회가 끝나면 공통의 목표를 잃은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로 갔다. 나의 양심은 눌려 있었고 평화에 목말라 있었다.
한 친구로부터 태백의 산골에 기독교적 동지애를 나누는 공동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예수원으로 향했다. 굽은 산길을 올라가다 보니까 바위 언덕에 세워진 아담하면서도 다부진 모습의 돌집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데 환한 얼굴에서 평화를 내뿜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왠지 두려움을 털어놓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엄하고 고용한 산들에 둘러싸여 며칠을 지내면서 나는 삶이 변하는 걸 경험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시간이 감사하다.
올해 오순절에 예수원은 설립 50주년을 기념한다. 예수원의 희년을 맞아 벤 토레이 신부를 인터뷰했다. 제인과 아처 토레이의 아들 벤 신부는 아내 리즈와 함께 2005년부터 예수원을 섬기고 있다.
― 아버지인 아처 토레이 신부가 50년 전 예수원을 설립할 때 “그리스도인 삶의 실험실”을 꿈꿨다는 데 그게 무슨 뜻인가?
아버지는 세 개의 실험실을 생각하셨다. 첫 번째 실험실은 각 사람이 하나님과 맺는 관계, 즉 기도와 관련이 있다. 실험 질문은 이거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며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신다는 걸 신뢰하는가?” 두 번째 실험실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를 살펴본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 수 있는가?”라고 묻는 거다. 세 번째 실험실에서는 기독교 공동체가 세상과 맺는 관계를 성찰한다. “우리는 사회의 문제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그분의 사랑을 실제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 두 번째 실험실에 다루는 공동체 안의 인간관계에 대해 말해 보자. 예수원 안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코이노니아는 다른 말로 하면 ‘일치’인데, 이는 성령의 선물이다. 최근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서로 더 사랑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잘 알고 있다.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
예수원에서는 용서를 구하는 일이 쉬운 문화를 일구려고 노력해 왔다. 어떤 사람이 사과하면 우리는 “살롬”이라고 화답한다. “용서받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실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할 때 이렇게 한다. 지난주에 내가 강의를 하는 데 프레젠테이션 도움을 주던 한 자매가 서두르는 바람에 실수를 몇 번 하고야 말았다. 강의가 끝날 무렵 그 자매는 일어나서 사과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바로 대답했다. “살롬.”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제물을 드려라.” (마태복음 5:23~24, 새번역) 만약 어떤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두 사람이 직접 용서할 길을 찾고,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에는 화해를 이루고 오라고 권한다. 매 주일 성체 성사를 할 때 우리는 공개적으로 고백과 화해의 시간을 가진다. 몇 분 동안 침묵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양심을 눌러온 죄를 고백할 기회를 준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받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마음이 움직여서 고백하면 우리는 모두 “살롬”으로 화답한다. 지난 주일에는 우리 공동체의 십대 두 명이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 더 넓은 차원에서 비슷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게 가능할까? 예를 들어 남북한 사이에서도 가능할까?
그렇다. 우리가 여기서 작은 차원으로 경험한 것을 더 큰 차원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삼수령 목장은 예수원이 1975년부터 가축을 기르기 위해 빌려 쓰고 있는 곳이다. 삼수령이라는 이름은 이 목장이 있는 곳이 세 개의 강(江)이 만나는 기점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이곳에 내리는 빗물은 서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또는 동쪽으로 흘러 오십천을 통해 동해로, 아니면 남쪽으로 가서 낙동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부모님의 친구 한 분이 이곳에서 네 번째 강이 흐르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한 적이 있다. 그건 바로 북쪽으로 흘러가는 생명의 강이다. 그렇게 해서 네 번째 강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남한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살아있는 생명의 물을 북쪽의 형제자매들과 나눌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언젠가는 문이 열릴 것이다. 그 중대한 순간이 찾아올 때 그리스도의 사랑은 북한의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겸손한 방법으로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해져야 한다.
― 예수원 삼수령 목장에서 이미 그런 일을 시작하셨다. 북한 이탈주민과 남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마련 했는데, 두 그룹이 함께 했더니 어떤 일이 생기던가?
8년째 여름마다 노동학교를 열고 있다. 노동학교를 통해 젊은이들은 서로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나눌 기회를 얻는데 이건 이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보통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느라고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남한의 사람들은 그런 말을 별로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잘 안다.
노동학교에서는 보통 아침에 나무를 자르거나, 목장 초지를 관리하거나 축사를 청소한다. 이 경우 대부분 탈북 이주민이 시범을 보여주는 역할을 도맡는다. 한번은 톱으로 나뭇가지를 자르는 일을 했는데 북한에서 온 스물세 살 된 여성이 아주 노련하게 톱질을 하며 제일 앞서서 언덕을 올라갔다. 그런 일을 열네 살 때부터 했단다. 이 여성에게는 자신의 기술도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경험이었다. 그 일로 노동학교에서 젊은 참가자들에게 모범적인 인물이 되었다.
― 인도주의 물자 지원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어떤 경험을 했나?
북한을 여행하는 동안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고 아름다운 풍경도 봤다. 동시에 거짓말의 덫에 빠진 사회도 목격했다. 많은 시간 거대한 종교 집단 안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남한의 사람들만큼이나 두 나라 사이의 거대한 격차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함께한 북측의 한 동료는 내가 통일을 준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 칭찬하면서도 사실 그런 노력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한다. 문화도 하나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가정하는 걸 북한과 남한 양쪽에서 들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진실과 거리가 먼 생각이다.
― 특별히 북한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느끼는 도전이 있다면?
공동체와 협력의 정신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북한 사람들 옆에 걸으면서 형제자매가 된다는 뜻이다. “전문가” 자격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걸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 깊은 겸손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서로 아주 다른 문화들을 다루는 일이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일임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도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일치를 이루는 일이다. 만약 지금의 교회가 온갖 경쟁과 부패상을 유지한 채 북한으로 가면 오히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을 방해할까 두렵다. 그리고 남한의 물질주의는 북한을 황폐화할 수도 있다.
― 교회의 분열이 큰 방해물이라는 뜻인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나님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진정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사이에서 일하실 수 있다. 성령만이 회개와 용서, 회복과 진정한 일치를 이루게 할 수 있다. 성령의 세례를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임무를 수행할 힘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 임무에는 북한의 사람들을 섬기고 한국의 통일을 준비하는 일도 포함된다. 성령이 이 땅에 부어질 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설립자 아처와 제인 토레이(한국명: 대천덕•현재인)
아처 토레이는 1918년 중국에서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 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로서 선원이 되어 상선을 탔으며, 1957년에는 성공회 신학교를 재건하라는 부탁을 받고 서울로 왔다. 얼마 안 있어 아처와 아내 제인은 사람들이 예수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일굴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65년 아처와 아들 벤, 자원자 몇 명은 태백의 산골로 옮겨 가서 공동체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의 예수원이 됐다.
곧바로 사람들이 물결이 쏟아져 들었고 그 물결은 지금까지도 마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며칠을 머물며 공동 노동과 예배에 참여했고, 그중에는 회원으로 남은 사람도 있었다. 오랜 세월 토레이 부부는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을 섬겼다. 2002년 아처 토레이 신부가 하늘의 부름을 받은 후 10년이 지나 아내 제인도 그 뒤를 따랐다. 아이들을 포함해 70여 명의 사람들이 예수원에 살고 있으며 매년 3천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예수원의 화해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홈페이지(www.thefourthriver.org)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사진은 예수원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이 글은 <복음과 상황> 295호에도 실렸습니다. (20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