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영문판으로 미국도서관협회 2020 베첼더 어워드 어너리스트에 선정된 이억배 작가가 코로나 19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걱정하는 어린이 독자들의 편지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2020년 4월 20일

이억배 선생님께,

책 《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을 그려 주셔서 감사해요. 아주 잘 읽었어요.

부활절 맞기 바로 전에 저희 마을 마구간 한쪽에서 오리새끼들이 태어났어요. 알을 까고 나오는 오리들 모습이 참 신기했어요.

저희 어항에는 새끼 물고기가 태어났어요. 엄마 물고기의 입 안에서 알을 까고 나온 거예요. 이제는 바닥의 인조 해초에 숨어서 조심스럽게 먹이를 먹으러 헤엄쳐 나와요.

요즘 같이 힘든 때에 새롭게 태어난 생명이 희망을 주는 것 같아요. 선생님 가족 모두 건강하시죠?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국에 사시는데 걱정이 돼요. 저희와 아주 멀리 떨어져 사시는데 언제 뵐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 같이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 격리 시간이 끝나고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사라지는 날을 몹시 기다리고 있어요. 그날은 선생님 책 《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에 나오는 철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같을 거고요. 그러면 정말 좋겠지요?

안녕히 계세요.

원산하(10살), 창호(8살) 드림

이억배 그림

2020년 5월 1일 금요일

산하, 창호에게

요즘은 ‘그동안 잘 지냈니?’ 라는 인사말이 너무나 조심스럽고 안 어울릴 만큼 전세계가 힘든 격리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어쨌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니? 나는 너희가 염려해준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보내준 편지 반갑고 재미있게 잘 보았어. 너희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이 편지를 통해서만 알고 있지만 마치 이웃집에 사는 다정한 어린 친구처럼 느껴지는구나.

오리나 물고기 새끼들이 태어날 때 어떤 느낌이었니? 사실 나는 아직도 오리나 물고기가 태어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거든. 하지만 예전에 강아지나 병아리가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기분과 비슷하겠지?

여기 한국의 코로나 상황은 다행히 많이 좋아져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일상생활을 회복하고 있고 아이들은 온라인상이지만 학교생활도 하고 있고 부분적으로 개학도 준비하고 있단다.

지난주에는 나의 부모님의 생일이 연이어 있었는데 가족들이 모이지 못하고 전화로만 축하인사를 하고 우편으로 선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단다. 부모님들은 전화통화만으로도 좋아하셨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해 무척 서운해 하기도 하셨단다.

창밖을 내다보면 나무들에 새순이 돋고 꽃이 만발한 봄이 왔지만 사람들은 불안 속에 살면서 찬란하게 빛나는 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구나.

너희들이 걱정한 대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조차 식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 오히려 못 만나는 시간만큼 만나고 싶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질 수도 있어.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만날 수 없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다면 그때는 많은 것이 달라지겠지. 어쨌든 만나지 못해 아쉬운 만큼 너희들의 전화와 편지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좋은 위로가 될 것 같구나.

산하야 창호야! 너희들에게 이렇게 어렵고 힘든 세상을 물려주게 되어 미안하구나. 지금 전 세계를 대혼란에 빠뜨리게 한 것은 모두 어른들의 잘못 때문이란다. 전 세계 사람들이 편리한 것과 새것만 좋아하고 한정된 자원을 펑펑 써 대면서 자연생태계를 파괴한 결과로 이렇게 세계적인 감염병이 퍼진 거란다.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겠지만 또 어떤 바이러스들이 뛰쳐나와 소동을 벌이게 될지 걱정스럽구나. 그러나 전 세계 사람들이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잘못 살아왔던 것을 반성하고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지 함께 고민한다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장벽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안녕, 건강하게 잘 지내.

이억배

이억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