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보이는 자리》(비아토르)에서 발췌한 이 글은 인생이 지옥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삶과의 싸움을 보다 완전하고 근본적으로 이해하도록 지평을 넓혀준" 사람을 소개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이들의 신비는 그들이 예수라는 사실이다. 당신이 그들을 위해 하는 모든 일은 그분을 위해 하는 것이다.” 도로시는 도시에 공동체 집을 건설해 실직자와 노숙자들에게 환대를 베풀었던 느슨한 조직 운동 ‘가톨릭 워커Catholic Walker’를 시작한 인물이다. 도로시는 자신이 섬기는 ‘흉악한 도둑들’의 정나미가 떨어지는 겉모습을 꿰뚫어 봤고, 그 안에서 거룩한 존재를 발견했다.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사실 무신론자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도로시의 삶은 급진적이다. 1950년대 중반 처음 만났을 때부터 1980년 세상을 뜰 때까지 도로시와 나눈 우정은 내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도로시가 뉴욕시의 빈민가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좁은 방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수십만 명이 애도했다. 대주교들은 도로시를 간디나 마틴 루터 킹에 견주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한 시대의 끝’이라는 표현을 썼고, 도로시를 존경하던 부유한 이들은 추도 미사를 준비했으며, 실직자들은 울부짖었다. 이 나이든 여성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1897년 브룩클린에서 태어난 도로시의 성장 과정은 드라마 같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일리노이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고, 유럽 일주를 했으며, 할리우드와 뉴욕에서 글 쓰는 일을 했다. 소용돌이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 생활의 파탄, 낙태, 일련의 불행한 인간관계를 겪으면서 도로시의 삶은 휘청거렸다.
1926년 도로시는 딸 타마르를 낳았다. 그 일은 그녀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품었던 온전하고, 풍성한 삶을 향한 동경이 더 깊어졌다. 오랜 시간 가톨릭 신앙에 매력을 느끼던 도로시는 때로는 지나치게 분방한 보헤미안이었지만, 복음서를 파고들어 믿음의 시작점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로시는 깊은 회심을 경험한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도로시의 ‘종교’를 비웃었지만 도로시는 단념하지 않았다. 자기가 아는 기독교가 완벽하지는 않다고 인정했지만 도로시는 모든 이가 바라는 정의로운 사회는 하나님이라는 기초 위에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도로시가 전통적인 교회에 만족한 건 아니였다. 찰스 디킨스와 업턴 싱클레어의 소설을 읽으며 성장한 도로시는 자신을 노동 계급과 동일시했고 ‘노예를 상대로 목회하는 것이 아닌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믿음을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도로시는 자신이 ‘자비의 실천’이라고 부른 일에 삶을 바쳤다. 노숙자들을 먹이고 재웠으며,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쓰면서 강연을 했고,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시위를 했으며, 사형제 폐지를 위한 행진을 했다.
달변에 거침이 없었던 도로시는 모든 이데올로기 진영의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 바티칸은 도로시가 공산주의와 너무 가깝다고 생각했고, 대중 매체는 도로시의 믿음에 당황해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도로시가 시민 불복종 운동으로 감옥에 갈 때마다 악담을 퍼부었다. 좌파 친구들은 그녀의 체제 전복적 행동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도 도덕에 관한 이상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바르고 ‘전통적’이라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도로시의 관심은 정치에 있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에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추상적인 사랑은 중요하지 않다. 남자들은 여자를 사랑하듯이 대의명분을 사랑했다. 그들은 수도회, 노동자와 빈민, 억압받는 이들을 사랑했지만, 인간은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개인적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임을 모두 인정한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어 보았는가? 그 책에는 기차를 타고 먼 유배지로 떠나는 정치범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형제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쇠사슬에 묶이고 박해를 감내했다. 그러나 정작 시베리아로 향하는 긴 유배 길에서 곁에 함께 있던 형제는 외면했다. 추상적인 형제들은 사랑하기 쉽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바로 옆에 있는 형제들이다.
도로시의 말은 우리가 세상을 단번에 바꾸겠다는 마음을 쉽게 품지만, 정작 행동은 번번이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함을 보여 준다. 도로시는 동역자들에게 우리가 제일 잘 돌볼 수 있으며 가장 먼저 상처를 치유해야 할 사람은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임을 알려 주었다. 도로시는 이런 보이지 않은 ‘좁은’ 길에 관해 말을 했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지치지 않고 그 일에 헌신했다.
대공황 때 도로시는 날마다 노숙자들에게 빵과 커피를 대접했다. 1970년대에 뉴욕에 또다시 불경기가 찾아왔을 때도 여전히 같은 일을 했다. 냉소적인 이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지 모르지만, 도로시는 그러지 않았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리 작아도 소중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처음 의도하신 대로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먹고, 입고, 쉴터를 찾도록 돕는 일이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의 조건과 노동자와 빈민, 궁핍한 이들의 권리를 위해 끊임없이 외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고통 받는 세상에 작은 기쁨과 평화의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못에 작은 조약돌을 던지면서 한없이 퍼져 나가는 동그란 물결이 세상 곳곳에 닿으리라 확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