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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out고기를 익혀 얇게 썰어 두었다. 마늘로 맛을 낸 브로콜리와 당근은 수북이 접시에 담고, 갓 구워 발간 빛을 내는 빵이 차례로 숨을 내쉬는 동안 나는 온 식구를 식탁으로 불러 모았다. 토요일 저녁, 우리 가족은 특별한 록다운 정찬을 먹는다. 아들 녀석들도 제법 애를 쓴 모양새다. 단추 달린 셔츠와 들판에서 토끼를 잡아왔을 때와는 딴판인 깨끗한 청바지로 갈아 입었다. 남편 크리스는 ‘당신, 정말 정성껏 상을 차렸구나. 어서 맛보고 싶어 죽겠는걸.’ 말하듯이 내 등허리에 손을 두른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온 식구가 먹으려고 식탁에 모일 때마다 전화가 울리기 때문이다. (여기 호주 개척지에서 시대착오적인 유선전화는 필수적이다. 좋은 날에도 휴대폰 통신망은 불통이 잦다.) 남편은 누구일지 짐작이 간다고 했다. 몇 시간 전에 잘 모르는 여자분이 목 매인 울음 섞인 음성 메시지로 남편에게 응답 전화를 부탁했다.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고, 주변 이웃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마침내 그분과 이루어진 통화. 문제는 끝이 없었다. 망가진 광전지 탓에 전기도 온수도 없는 임대주택, 남몰라 하는 집주인, 악화된 건강, 입히고 씻겨야 하는 두 명의 아기 손주들.
어둠은 짙어가고 춥다. 난 그저 식구들과 식사를 하고 싶을 뿐이다. 제발, 지금! 와인은 이미 부어졌고, 촛불도 켜 놓았는데, 우리 식구를 위한 특별한 토요일 정찬인데. 록다운 기간 동안 우리는 일상의 리듬을 만들려고 그리고 기대해도 좋을 특별한 시간을 마련하려고 얼마나 신경을 썼던가. 우리 식탁이 우리 집의 이토록 위안처가 된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홈스쿨 수업과 온라인 과정이 끝나면 사전이며 연필, 안경, 코 푼 휴지(계절성 비염 때문에) 따위를 식탁에서 치우며 흩어졌던 하루의 끝을 성스럽고 축복된 제단으로 장식한다. 왜 이런 내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 거지? 음식과 건강한 웃음과 친구들로 가득했던 부엌과 베란다에서 어울리던 날들은 이제 끝났는데.
이렇게 어둡고 추운데 그 할머니는 미지근한 물에 아기들을 씻기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왈가왈부하는 건 오직 내 맘속이다. 남편 크리스는 할머니를 당연히 도울 거다. 다 식은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여기저기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걸고, 전기 온수통을 찾고, 식료품을 담으며 소형 트럭을 가진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남편. 하루가 어땠는지 물을 시간도, 정감 어린 농담도 없다. 식탁에 앉아 느긋할 시간을 누려야 할 나의 필요보다 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불편함 때문에.
남편을 따라 차고에 가보니 남편과 큰아들은 이동식 발전기에 연료를 이미 넣고, 전선을 감고 있었다. 밤이 어둡다. 어둠에 빠진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다. “여보, 꼭 그렇게 당신 일처럼 챙길 필요 없잖아? 그 여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 좀 봐. 하루종일 피곤해서 지쳤잖아. 딴 사람이 하도록 하면 안돼?”
크리스가 멈춰 돌아보며 차분히 말한다. “이건 내가 직접 할 일이야.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어.”
그 일이 떠오른다. 지난 몇 주간 얼마나 힘들었던가. 남편은 문 앞에서 깊이 상처투성이가 된 친구가 몸부림을 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저 친구 마음의 상처를 붙들고, 우리마저 부서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원했었다. 세상에는 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 너무나 큰 고통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적다고 봤다. 그런데 막상 내 눈앞에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는데 난 내 일상을 방해한다고 분개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돕고 싶어 하는 남편을 괴롭힌 걸 뉘우쳤다.
어질러진 식탁과 부엌으로 돌아와 지난 몇 주간을 돌아봤다. 나의 존재가 새롭게 바뀌도록 강제한 시간들이었다. 대유행병 위기 속에 영웅들은 의심할 바 없이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며 지역사회를 섬기는 의료진과 각계 사람들이리라. 그러나 바이러스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동안 우리 대중이 할 수 있는 이웃사랑이란 서로를 멀리하는 거겠지. 난 은둔 기질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행동파인데. 나는 사랑을 정성껏 만들어 대접하는 음식이라는 언어로 구사해왔다. 식탁의 교제는 우리 가정과 우리 브루더호프 공동체 나눔의 삶에 너무나 중요하건만, 고삐 풀린 듯한 대전염병의 엄청난 규모의 고통 앞에 비춰진 내 모습은 어이가 없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멈춰보니, 무엇이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지 보인다. 내가 준비한 음식을, 내 방식으로, 내 집에서, 내 식탁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못하는 거였다.
아마도 난 더 조용하게 더 섬세하게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환대하는 걸 배워야 될까 보다. 음식이나 레시피 같은 거나 나누지 말고 영혼을 살찌우는 인내의 방식으로. 어쩌면 나는 초를 밝히고, 와인잔을 채우는 목가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일에 신경쓰기보다는 서툴더라도 축하하고 섬길 수 있는 인생의 기회를 잡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가 보다. 놀랍지도 않다. 미리 정해진 날에 차린 축하상도 내 맘속에 연극 무대를 올리듯이 준비하지만 기대에 부응한 적은 제대로 없지 않았던가. 뭔가 삐걱거리던가 산만해지기 일쑤였지. 촛불을 밝히면 분위기야 좋다. 그러나 진정한 만남은 일상의 피로를 잠시 한숨이라도 돌릴까 싶어 불쑥 찾아온 이웃에게 내민 차 한 잔에 있었다.
벽에 걸린 달력이 이상하게도 텅 비었다. 몇 달 전 달력은 온통 초대 일정과 생일, 기념일 그리고 별일 없는 약속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T.S 엘리엇의 유명한 한 구절 “회전하는 세계의 정지점”을 되새겨본다. 아직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걸까? 온 사방이 너무 분주하다. 슬픔, 고통, 부정, 죽음이 넘친다. 그래도 여전히 멈춰진 순간은 충분하다.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정지된 동작이 침묵은 아니다. “이 점, 이 정지점 외에는 / 춤은 없으리니, 춤만 거기에 있으리니.” 시인의 말은 봉쇄 기간에 친구들로부터 받은 전화와 메시지와 함께 나와 머문다. “닭을 어떻게 놓아 기르지?” “화학요법이 끝났어. 이제 몇 주 동안 끔찍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돼.” “야생 토끼를 잘 해먹을 조리법은 없을까?” “엄마가 죽어가는데, 작별인사를 할 길이 없어.” “집구석이 무슨 교실 난장판 같애. 너네 집은 어때? 정말 집처럼 꾸밀 방법은 없을까?” “정말 울음이 자꾸 나와. 모든 게 정말 낯설고 힘들어….” 우리 모두 춤을 춘다. 있는 힘을 다해서.
아는 것이 적은 나를 가르쳤던 강인한 여인들을 떠올려본다. 가르침에 끼어들고, 바보 같은 질문 따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들은 항상 돕는 게 우선이요, 묻는 일은 나중이거나 전혀 묻지 않았다. 그들은 나도 모르게 옆에 다가와 다시 알려준다. 지금 당장이라도. 지금 나는 인간관계와 환대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내 자신에게 묻는다. 내 마음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더 민감한가? 나는 먼저 손을 내밀려고 하는가 아니면 첫 손길이 되기보다는 누군가 먼저 짐을 지길 바라고만 있나? 기도로 전화로,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힘껏 동원해서 다른 사람의 평화를 위한 정지점이 되어야 하리라. 동시에 난 겸손함을 간구하련다.
저녁 늦게 감사하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할머니는 발전기와 전기 온수통을 빌려줘서 아기들을 따뜻하게 씻겼고, 챙겨준 음식물로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신 모양새였다.
우리한테는 별 일도 아니었는데.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지금이나 앞으로도 별로 없을 것이다. 조국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상처, 일촉즉발인 억눌린 분노를 멀리서 지켜보는 미국인으로서 그런 생각이 배나 든다. 우리 중에 본인을 극히 중요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유혹에 빠진 사람이 있었다면,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을 거라 확신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억지로 격리되어 살아야 할 때이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마음과 영혼을 열 기회를 준다. 과연 우리가 줘야 할 게 뭔지는 불확실하지만.
그 사이에 전원은 꺼졌다.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세계 곳곳에 전기가 나갔는데 대체용 발전기를 찾아 볼 수 없다. 호주만 봐도 대유행병 자체는 놀라울 정도로 잘 억제된 편이다. 그러나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현재 경제 사회적 영향으로 인한 자살률이 50% 이상 높아질 거라 예상한다. 호주의 자살 건수는 코비드19으로 인해 사망 건수보다 10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절망이라는 바이러스를 백신 접종할 수 있는 기적의 만병통치약이란 없을진대, 오늘 저녁 일로 (창피하고 고통스럽지만) 나는 누군가를 돕는 데는 대단한 치료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내 마음에 완벽한 상을 차리리라! 촛불도 밝히고, 발전기도 준비해 놓고, 붉은 포도주와 전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낯선 이들이 와서 먹고 마시며 환대 받는 자리를 마련하리라!
농부의 딸로 자란 뉴욕 출신의 노랜 볼은 호주의 시골 단쏘니아 브루더호프에서 남편 크리스와 세 명의 아들과 산다. 노랜은 브루더호프 웹사이트에서 제자도와 모성, 사람들을 먹이는 이야기를 쓰는 블로거이기도 하다. 트위터 @Noran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