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영생을 얻으십시오. –디모데전서 6:12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2017년 4월 15일 성토요일에 76세의 나이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모든 사람의 형제이며 친구, 거의 51년을 아내 버레나에게 신실함을 지킨 남편, 많은 이의 아버지이며 오파(독일어로 할아버지), 목사,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은퇴 장로, 사목, 작가, 강연가였던 크리스토프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했다. 모든 장애물과 문제를 극복하는 힘인 용서의 메시지를 통해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눈에 특별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볼 수 있도록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사용한 언어는 강력했고, 유머가 녹아 있었으며 단일한 메시지를 전하는 단순한 말을 사용한 덕에 문제의 본질을 뚫을 수 있었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삶을 사랑했던 그는 지적인 대화보다는 소시지와 맥주를 나누며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부모 요한 하인리히와 애너마리 아놀드는 할아버지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독일에서 창립한 교회 공동체 브루더호프의 일원이었다. 나치의 거센 종교 탄압을 피해 그의 부모는 교회의 일원들과 함께 영국으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1940년 11월 14일 영국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크리스토프는 태어났다. 1942년 거세진 반독일 감정 탓에 브루더호프의 모든 멤버는 남미의 파라과이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그는 험하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어른들조차 기후가 거칠고 해충이 들끓는 곳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1954년 크리스토프는 가족과 함께 미국 뉴욕주 리프톤에 있는 우드크레스트 공동체로 이사를 갔고,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 킹스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영어를 배우고, 크로스컨트리에 참가했으며, 셰익스피어를 접하고 그의 문학을 평생 사랑하게 됐다. 경영학을 공부해 1960년에는 오렌지 카운트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뒤에는 브루더호프의 신생 기업인 커뮤니티 플레이띵스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플라우 출판사에서도 일했다. 1966년 5월 22일 버레나 마이어와 결혼해서 여덟 명의 자녀를 얻는 축복을 누렸다.
1972년 그는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83년에는 브루더호프의 장로에 임명되었으며, 2001년부터 삶의 마지막까지는 은퇴 장로로 섬겼다. 그가 섬기는 동안 브루더호프는 유럽과 남미에 재정착을 하고, 호주에 공동체를 설립했으며 여러 도시에 작은 공동체들을 세워나갔다.
크리스토프는 12권의 책을 썼고 그 책들은 20개의 언어로 옮겨졌다. 그것들은 자신이 열정을 지녔던 결혼, 가족, 아이들 양육과 교육, 용서, 삶의 마무리와 죽음, 평화, 그리고 믿음을 주제로 한 책들이었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에 녹여 냄으로써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실제적이며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읽히고 사랑을 받은 책은 《왜 용서해야 하는가》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통해 전했던 평화는 우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영향을 받았으며, 뒤에 1965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빚어졌다. 이 소명을 통해 그는 수천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됐고, 그중에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다. 종종 그는 분쟁과 전쟁의 소용돌이가 일거나 자연재해가 벌어진 곳을 방문했는데 그 중에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북아일랜드, 르완다, 나이지리아, 치파스, 멕시코, 파라과이, 쿠바, 아이티, 태국 등이 포함되었다.
늘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했던 것은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이는 가족과 사회적 가치의 붕괴가 심화될수록 더했다.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뒤 고조되는 폭력에 우려한 크리스토프는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보호시설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용서를 통한 갈등 해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브레이킹 더 사이클을 시작하는 것을 도왔다. 근무 중에 자신을 쏜 십 대 소년을 용서한 뉴욕 경찰청 소속의 스티븐 맥도날드 경위를 포함한 전직 폭력단체 일원, 자살 또는 약물, 술 중독 희생자의 가족들과 함께 강연하면서 크리스토프는 집단 따돌림, 또래 압력, 소외, 외로움, 인종주의, 배타주의 같은 인생 문제의 뿌리를 거침없이 건드렸다.
이런 활발한 활동 가운데에도 그는 자신이 섬기는 회중을 상담하고, 가족을 이루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을 돕고, 깨진 결혼을 치유하고, 질병과 위기에 용감하게 대처하고, 장례를 치르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가 제공한 조언은 늘 건강한 유머와 잘 배합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유머가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브루더호프의 사람들만 돌봤던 것은 아니다. 특별히 그는 지역 경찰관들에게 깊은 애정을 지녔고, 얼스터 군 경찰서와 얼스터 군 경찰 서장 협회의 사목으로 섬겼다.
크리스토프는 51년을 함께 해온 아내 버레나 마이어 아놀드와 8명의 자녀 중 7명(에미 마리아와 마이클 블라우, 하인리히와 윌마 아놀드, 브레늘리와 레이몬드 호퍼, 애너마리와 팀 카이덜링, 해나와 크리스 라임스, 크리스와 에스텔 아놀드, 프리실라와 레드 짐머만), 그리고 44명의 손주와 4명의 증손주를 남겼다. 그의 죽음에 앞서 2008년에는 손녀 스테파니 진 라임스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고, 루벤 짐머만과 결혼한 딸 마그릿이 2015년에 45세의 나이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와 매장은 4월 20일 목요일 오전 10시로 예정되어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중의 일부를 옮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진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우리 중 누군가 자그마한 역할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뛰어나거나 위대해서가 아니라 자비로운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보여줄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에게 감사를 드리는 겁니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2017년 4월 9일 종려 주일에 한 말
*이 글을 쓴 J. 하인리히 아놀드는 고인의 큰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