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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ess men set up on board

    체스

    - 게어 쿱만

    2018년 12월 2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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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환 오

      좋은 글 입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엔 다이히마 같이 될 수 있는데 다이히마가 경험한 구원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길...

    성탄 전 날 밤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쌀쌀하게 바람이 불어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눈발이 하늘에서 내려와 농부 다이히마가 사는 작은 마을을 조금씩 덮었습니다. 내리는 눈은 내년 농사를 위해 갈아 놓은 밭을 덮고, 건초와 옥수수가 가득한 커다란 헛간을 덮고, 뜰을 덮고, 큰 외양간과 집을 덮었습니다.

    늙은 농부 다이히마는 벽난로가에 앉아 눈이 내리는 걸 바라봤습니다. 다이히마는 밭에 내리는 눈이 좋았습니다. 내년 농사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방안은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상 위에는 체스판이 놓여 있었고 네 줄의 말들은 하얀색과 검은색 정사각형들 위의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체스를 좋아하는 다이히마는 교구 목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찾아오는 목사는 늙은 농부와 체스를 뒀습니다. 성탄절 때마다 어김 없이 왔으니 목사는 오늘 밤에도 올 겁니다. 그렇고 말고요. 다이히마는 체스를 좋아합니다. 늘 이기기 때문입니다. 마을에서 체스로 다이히마를 당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을에서 다이히마만큼 부자인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이히마는 최고의 농부이며 최고의 체스꾼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다이히마는 홀로 하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내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등졌는데 올해 성탄절에는 아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늘 혼자였고, 사실은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올해는 얼마나 큰 풍년이 들었는지! 자기가 마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마을 거리를 지날라 치면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합니다. 누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이히마는 기꺼이 도와줍니다. 일이 필요하다고요? 그러면 일을 줍니다. 돈이 필요하다고요? 그러면 빌려주면 그만입니다.

    a man playing chess

    덜컥 문이 열리더니 하인이 들어왔습니다. “시간이 좀 늦어지는데요. 성탄 타트가 식지 않게 오븐 안에 넣어 둘까요?”

    다이히마는 시계를 쳐다봤습니다. “오늘은 목사님이 늦네. 그래 타트를 오븐에 넣어 두게.”

    하인은 문간 쪽으로 가며 말을 던졌습니다.

    “목사님이 못 오시면 어떡하죠? 눈이 아주 깊이 쌓이고 있는데요.”

    다이히마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난 기다릴 수 있네.”

    a maid in front of stone fire place

    하인이 나가자 다이히마는 일어나 창 밖을 내다봤습니다. “세상에 눈이 저렇게 많이 오니. 목사님은 못 오실 게 분명해. 눈이 많이 쌓였어.” 이렇게 말하며 체스판을 아쉬운 눈길로 쳐다봤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오고 있었습니다! 아이 그리스도가 오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 그리스도는 바빴습니다. 아이 그리스도의 시간, 성탄절이 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는 걸 애타게 바라는 아이 그리스도는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고, 집에서 보낸 성탄절이 얼마나 좋았는지 생각합니다.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잘못된 일을 생각합니다. 고치고 새롭게 시작하길 바랍니다. 그때 아이 그리스도가 찾아옵니다.

    하루 종일 아이 그리스도는 아주 바빴습니다. 그래도 아직 한 가지 할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늙은 농부 다이히마에게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이히마에게 가라고 했을 때 아이 그리스도는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마음은 아직도 꽉 닫혀있는걸요.” 라고 하소연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호했습니다. “가거라. 너무 오랫동안 마음이 굳어 있었어. 이제 때가 온 거야.”

    눈길을 걸으며 아이 그리스도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하지만 하나님이 “지금이다.”라고 하면 지금이 그 때인 겁니다. 아이는 어느새 늙은 농부의 방에 나타났습니다. 아이가 오는 걸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고, 본 사람도 없이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안녕하세요, 다이히마.” 아이는 고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다이히마는 아이를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물었습니다. “넌 누구니 꼬마야?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니?”

    아이 그리스도는 다이히마 건너편 벽난로 옆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저는 아이 그리스도에요.”

    “아이 그리스도? 그래, 네가 필요한 게 뭐니?”

    “할아버지하고 얘기만 하면 되요.”

    “할 말이 하나도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성탄 축하에 쓰라고 교회에 오백 길더를 줬어.”

    “알아요.” 아이 그리스도는 말했습니다. “주일 학교에도 축하하라고 이백오십 길더를 내셨죠?”

    “맞아.” 농부가 말을 이었습니다. “마을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오백 길더를 내 놓았고, 아픈 사람이 있다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하인을 보내서 선물 꾸러미를 전했지.”

    “다 알아요.” 아이 그리스도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왕좌에 앉아 자기 백성 모두에게 작은 선물을 나눠주는 왕처럼 앉아 계시는군요. 하지만 올해 할아버지가 번 수천 길더에 비하면 그 선물은 한없이 작아요. 그것마저도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준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주셨죠. 그래서 만족해하며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게요. 오, 성탄절 이야기만 아셨더라도!”

    two chess men

    “알아. 외울 수도 있어. ‘그 무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봐요, 아주 잘못 알고 계시잖아요!”

    “잘못 알고 있다고?” 농부 다이히마는 가까이 놓인 성경책을 집어 펼쳤습니다. “보라고, 여기 있잖아. ‘그 무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틀렸어요! 그 이야기는 저도 알아요. 제가 아이 그리스도라고요! 아우구스투 시절은 먼, 먼 얘기가 아니에요. 매년마다 또다시 일어나고, 해마다 어딘가에서 아이가 태어나요. 가난하게 옷도 없이 도움을 기다리면서요. 할아버지의 도움을 기다리는 거에요. 때로는 아픈 아이가, 때로는 가난한 남자가, 가난한 여자가 할아버지의 도움을 기다려요. 그게 성탄절 이야기에요.”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죄인이라는 걸 알아.” 다이히마가 말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라고. 하지만 형편이 닿는 대로 내 할 일을 다 했어. 가진 돈을 죄다 나눠 주며 살 수 없는 거야. 그건 말도 안돼!”

    “전 돈만 주라고 하지 않아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사랑이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셨다고 하셨죠? 그러면 따님은요?”

    늙은 농부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내 딸은 죽었어. 그 아이는 나한테는 죽은 사람이야! 정말 아이 그리스도라면 십 년 전에 그 아이가 내 뜻을 어기고 결혼했다는 걸 알 텐데. 내 뜻을 물리치고 예술가인지 음악가인지에게 시집을 갔다고. 자녀라면 부모의 말에 순종해야 해. 안돼. 그 아이 얘기는 하지 말라고.”

     “따님은 가난해요. 아들도 있잖아요.”

    “알아. 그 아이 잘못이야. 내 잘못은 아니야!”

    아이 그리스도는 시계를 쳐다봤습니다. 일곱 시 반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덟 시에는 부카가 아들을 데리고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아이 그리스도는 딸이 사는 곳에 가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라고 일러줬습니다.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말해줬습니다. 이제 삼십 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늙은 농부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단단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 그리스도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거니까요. 오히려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체스 한 판 둬요.”

    “둘 줄 알아?”

    “조금이요.”

    “좋다. 이렇게 떠드는 것보다 낫지.”

    체스가 시작됐습니다. 아이 그리스도는 체스를 잘 두지 못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십 분만에 벌써 성 두 개와 기사 하나를 잃었습니다. 다이히마는 양손을 비볐습니다. 농부가 이길 게 뻔합니다. 그렇고말고요. 그런데 체스 말들을 거의 반쯤 잃었을 때 아이 그리스도가 갑작스레 말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오늘 성탄 전야에 따님이 손자와 함께 이곳에 온다면 맞아 주시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체스판이나 잘 보라고. 지고 있어. 그런데 왜 그 아이들이 와야 하는데?”

    “제가 거진 진 거 같네요. 음, 질 거 같아요. 하지만, 제가 여덟 시 전까지 이긴다면 두 사람을 받아 주실 건가요?”

    늙은 농부는 웃었습니다. “그러지 뭐,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아이 그리스도가 웃었습니다. 여덟 시 일분 전이었습니다. 아이 그리스도에게는 왕과 왕비, 비숍만 남았습니다. 다이히마는 말 대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본 다이히마가 말했습니다. “여덟 시.”

    “여덟 시, 그리고 체크 메이트!” 아이 그리스도가 외쳤습니다.

    “체크 메이트?” 체스판을 들여다보는 다이히마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어? 잠깐만. 내 말의 위치를 전부 바꿔버렸잖아. 아니,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아이 그리스도는 다시 웃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말하는 아이는 아주 진지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잃었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그 무엇도 자기를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하죠.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하세요. “지금이다.” 그러면 단번에 모든 게 다르게 보여요. 모든 것이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고, 순식간에 모두 잃은 게 아니라 얻은 걸로 보여요. 잊지 마세요 다이히마! 그분의 눈에는 모든 게 잃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걸요. 낮은 것은 높아지고, 처음이 나중이 되요.” 아이는 사라졌습니다.

    다이히마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불가 옆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가만히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다이히마는 갑자기 눈을 떴습니다. 누가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잠이 들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이히마는 눈을 비볐습니다. 아이 그리스도가 나오는 아주 좋은 꿈을 꿨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이히마는 식탁 위에 두 줄의 하얀 말들과 두 줄의 검은 말들이 가지런히 마주 놓여있는 체스판을 바라봤습니다. 맞습니다. 꿈이었습니다. “들어와.” 라는 다이히마의 말에 하인이 들어왔습니다.

    “다이히마, 여기 아이가 와 있습니다. 아이 얘기가?.”

    다이히마는 깜짝 놀라 일어났습니다.

    “엄마하고 함께 왔나?”

    “아니오, 혼자 왔는데요. 그런데 사고가 있었대요. 엄마가 발목이 접질려서 이 킬로미터 밖에서 눈 속에 혼자 기다리고 있답니다. 도움을 청하라고 아이를 보냈다는 데요.”

    다이히마는 내 딸은 당연히 아닐 거라고 웃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차에 하인 몇을 실어 보내게. 방을 준비하고 이 아이 엄마를 데리고 와. 의사도 부르러 가고. 아이는 들어오라고 하게.”

    하인이 나가고 잠시 후에 아홉 살쯤 되 보이는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벅찼습니다. 마치 아주 오래 전의 자기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름이 뭐니?”

    “지그루드요.”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다이히마는 의자에 주저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지그루드는 어렸을 때 자기의 이름이었습니다. 내 이름을 따서 딸아이가 아들 이름을 붙여줬구나. 그런데 아이 그리스도는 어떻게 된 거죠? 물론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꿈 같은 건 거짓말이고, 말도 안 됩니다. 그런데 정말로 소년이 왔습니다. 자기 손자가요. 아닙니다. 농부는 딸을 안 받아들일 겁니다. 다이히마는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늙은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다들 어디 갔지?”

    “아시잖아요. 다들 자기 가족들하고 있죠. 나머지 둘은 불쌍한 여자를 데리러 갔고요.” 하인이 대답했습니다.

    “여기에 데리고 오면 안돼!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

    “다이히마! 성탄전야에 집에 오는 불쌍한 여인을 거부하겠다고요? 좋아요, 당신 책임이에요. 하지만 전 그 말을 전하러 눈길을 질러가지는 않을 거에요.”

    “도착하면 바로 내게 알려줘. 절대 그 여자를 집 안에 들이면 안 된다고.”

    다이히마는 거실로 돌아갔습니다. 벽난로가에 앉아 있던 소년은 다이히마가 들어오자 일어나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제 할아버지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다!” 다이히마는 윽박을 질렀습니다.

    A pocket watch and chessmen.

    소년은 슬픈 얼굴로 말했습니다. “잘못 찾아왔네요. 있잖아요, 엄마 말이, 엄마가 넘어지고 나서 하는 말이 ‘저기 농장 보이지? 그리고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해라.’라고 했거든요. 하지만 괜찮아요. 엄마가 오면 어디로 갈 건지 말해 줄 거에요. 음 그러니까, 엄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셨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제일 부자 농부세요. 엄마가 그러셨어요. ‘할아버지는 왕 같은 분이셔. 모두 찾아와서 조언을 구해. 있잖아, 아주 똑똑한 분이야.’”

    “그런데 왜 할아버지한테 가려고 하니?” 다이히마가 별안간 물었습니다.

    “엄마가 그러는데 아이 그리스도가 가라고 했대요. 있잖아요, 우리 집은 아주 가난해요.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돈도 없지만 엄마는 늘 말했어요. ‘내 발로는 못 가.’ 그런데 갑자기 아이 그리스도가 가라고 하셨대요.”

    “엄마가 아이 그리스도를 만났대?”

    “몰라요. 나중에는 꿈이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오는 길에는 별로 자신이 없으셨어요. 한번은 이렇게 말했어요. ‘아주 잠깐만 머물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아라.’”

    다이히마는 모닥불만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체스판을 발견한 아이는 식탁으로 다가갔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체스를 잘 두세요! 엄마가 그러는데 할아버지를 당할 사람이 없데요. 체스 둘 줄 아세요? 저도 둘 줄 알아요. 엄마가 그러는데 할아버지한테 물려 받아서 저도 아주 잘 둔데요. 저하고 한 판 두실래요? 그런데 배고파요. 저녁을 못 먹었거든요.”

    다이히마는 아이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정말 둘 줄 알아? 너 같이 작은 아이가?”

    “전 작지 않아요. 그리고 곧잘 이겨요.”

    “그럼 둬 보자.” 다이히마가 말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다이히마는 소년의 체스 솜씨가 보통이 아닌 걸 알았습니다. 거의 생각하지도 않고 말을 제 곳에 뒀습니다. 삼십 분이 지났고 다이히마는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이기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소년이 자기보다 체스를 더 잘 두는 것 같았습니다. 참기 힘들었던 건 자기는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소년은 고심도 별로 하지 않고 말을 탁탁 두는 거였습니다. 다이히마가 한참 생각을 한 뒤 겨우 말을 두면 소년은 곧바로 말을 절묘한 자리에 뒀습니다. 신경이 쓰인 나머지 다이히마가 그만 말을 잘못 두자 소년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잘못 두셨네요. 물리세요.”

    “아니야, 한 번 두면 그만이다!”

    chess men

    소년은 다이히마를 쳐다봤습니다. 왜 할아버지는 그렇게 화가 난 걸까요? 참을 수 없었나 봐요. 그렇죠? 체스를 이기지 못할까봐 그런 걸까요? 자기가 이기지 못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많으니 참 재미있죠. 질 때 제일 많이 배우는 건데요. 하지만 이분은 나이가 많이 드셨는데. 아마도?”

    a boy playing chess

    갑자기 늙은 하인이 들어왔습니다. “다이히마, 성탄절 타트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가지고 올까요?”

    다이히마는 아주 화가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타트 가지고 썩 사라져 버려!”

    ‘아깝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아주 배가 고팠는데요. 얼마나 화가 났길래. 지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요? 아이는 엉겁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저녁을 못 먹었어요. 타트를 조금만 먹으면 좋겠는데요.”

    “네가 둘 차례다.” 다이히마가 말했습니다.

    지그루드는 한숨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져주는 겁니다. 말을 한번 잘못 움직이면 됩니다. 그래도 그게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아이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도 성탄절이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하나 움직였습니다.

    다이히마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걸렸다. 보라고, 왕비를 잡았어. 우후, 내가 이길 줄 알았다니까.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지그루드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불공평했습니다. 져도 슬퍼하지 말고, 이겨도 잰 체 하지 말라고 늘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금새 미소 지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를 기쁘게만 해 들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거 봐요 체크 메이트가 나오기 전에는 누가 이길지 아무도 모른다니까요.”

    다이히마는 줄곧 아이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소리를 질렀을 때 아이 눈에 눈물이 고인 게 보였고, 표정이 변해서 미소 짓는 것도 봤습니다. 아이가 말하는 것도 유심히 들었는데 마치 아이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자 아이 그리스도가 한 말이 생각 났습니다. “때로는 모든 걸 다 잃었다고 생각하죠.”

    다이히마는 벌떡 일어나 방 안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아이는 놀란 눈으로 쳐다봤습니다. 다이히마는 자기 인생을, 긴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실수가 없었다고? 열려 있고 옳았다고? 잘못 돼도 뭔가 크게 잘못 됐던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눈이 멀어 있었을까? 내 마음은 차갑고, 감동도 안 하면서 온갖 좋은 일을 하며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 내가 얼마나 비뚤어진 늙은이인지도 모르면서. 마음 속 깊이 이렇게 생각하자니 꿈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이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오세요. 인생에 뭔가 새로운 걸 가지고 오세요. 사랑을요!” 그거였습니다. 사랑!

    다이히마는 아이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네가 이겼다. 너하고 아이 그리스도가 이겼어.”

    아이는 놀란 눈으로 다이히마를 쳐다봤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늙은 농부 다이히마는 미소 지었습니다. “괜찮다, 아이야. 괜찮아. 하지만, 꼭 기억해라. 아이 그리스도는 새로운 삶을 가지고 오신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세상은 모든 걸 잃은 것 같이 보였지. 누추하고 추운 구유에서 태어났고, 끝내 모든 걸 아주 잃어버린 것 같았어. 십자가가 끝이었지. 지그루드, 우리 꼭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바라보시고 ‘지금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을 꼭 기억해야 해. 그러면 그 순간이 바로 그때가 되는 거야! 십자가는 끝이 아니었어. 그리고 오늘도 아이 그리스도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려고 오고 계셔.”

    man and boy watching out window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늙은 하인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다이히마? 이 여인을 어디로 보낼까요? 지금 밖에 와 있어요.”

    “당연히 데리고 들어와야지.”

    “하지만 들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무슨 소리. 내 딸이야! 부카라고! 어서! 그리고 성탄 타트도 가지고 오게. 어서, 오늘은 성탄절이라고!”


    그림: 크리스틴 멘델

    지은이

    게어 쿱만은 1912년 홀란드의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뒤에 아내와 함께 영국의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일곱 자녀를 두었으며, 1983년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많은 단편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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