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일 한국에서 <공동체 제자도>가 재출간 되었다. 이 책은 또 다시 날카롭게 도전한다. 제자도!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를 버리고,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예수님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1997년도에 <공동체 제자도>를 처음 읽었을 때는 내가 이 삶을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공동체 제자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수님’이라는 말이 이제껏 읽었던 좋은 신앙서적들 보다 더 많이 언급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했다. 예수 그리스도! 어떠한 훌륭한 모토 보다 나의 마음에 평화와 쉼을 가져다 주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그분의 제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 그 당시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들었으나 그분을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쩌면 예수님을 만나는 것보다 중요했던 것은 ‘어떻게 세상 속에서 소위 신실한 기독 청년으로 살아야 하는가’ 였다. 적당히 타협점을 찾으며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오랜 시간을 방황해야 했다. 그렇게 10년을 고민하고 방황하고 실패하면서 겨우 깨달은 것은 예수님이 교회 안에만 계시지 않으며,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순결하고 날카로운 예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순결함’, ‘가난함’, ‘용서’라는 말들은 어리석고 불가능한 것들로 밀려나는 세상에서 나에게는 투명한 잣대가 필요했다. 수많은 종교적인 말들로 혼란을 가중시키며 지적인 만족감으로 가면을 쓴 채 살고 싶지 않았다. 또한 무신론자, 가톨릭, 성공회, 불교 같은 다른 종파에 속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까지 왔을 때는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해져 있었다. 너무나 버거웠다. 아마도 나는 개신교인이라는 이름표가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이미 구별 짓고 나누는 것에 지쳤다. 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는가! 어느 틀에 맞추냐가 중요하지 않으며, 예수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사랑하며 형제 자매로 살 수 있다는 것이 10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된 진리다.
자유를 경험하다
2007년 나는 영국 다벨 공동체에 방문한 뒤 한 달 만에 내 삶을 이곳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이 첫 방문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거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예상하지 못했던 도전과 사랑과 희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용서를 발견했고, 노동(공장일과 화장실 청소 등)이 주는 평화도 경험했다. 생각지 못한 변화와 갈림길에서 저항하고 갈등했지만, 이미 내 삶은 내 것이 아니었다. 기운이 다 빠져서 싸울 힘도 없이 하나님께 의탁했을 때, 그분이 인도하셨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은 명확하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개인적인 구원과 행복한 삶의 비결을 초월하는 비전을 품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형제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꿈꾸고 세워가는 것이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공동체의 삶은 치열하게 도전한다. 예수님이 모든 것이며,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사랑하고, 섬기는 삶은 죽을 때 까지 나(I) 중심주의와 싸워야 하는 삶이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 삶에 중심이 될 때, 회개를 경험하고 낮아질 때, 우리는 평화와 일치를 경험한다. 놀랄 만큼 다양한 국적과 인종, 언어와 문화, 자라온 배경의 차이가 우리를 나누지 못하는 것을 본다. 또 나 자신의 이기심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 다시금 평화와 자유와 기쁨을 발견한다. 이러한 기쁨과 평화는 내가 겪은 모든 갈등과 번민들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느낄 만큼 엄청난 것들이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제 저녁 모임에서 한 형제가 말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고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이곳의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경험하는 진리다. 우리 삶에, 나의 삶에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