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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out세상의 어른들이 국경의 장벽을 두고 말싸움을 벌이는 이때, 한 작가가 아이들의 마음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아이들이 언젠가는 어른들의 장벽들을 허물 거라고 믿는 이억배 작가의 그림책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이 쟁기출판에 의해 영문으로 발간됐다. 한반도 뉴스가 다시 저녁 뉴스를 장식하는 이때 작가의 생각을 들어봤다.
어떻게 DMZ 를 소재로 어린이 그림책을 그리게 되셨나요 ?
2006년 한국, 중국, 일본의 그림책 작가들이 어린이들에게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자는 취지로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평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살벌한 비무장지대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평화와는 반대되는 전쟁의 이미지를 떠올린 것이지요. 거대한 괴물이 할퀴고 간 상처처럼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남북으로 나눈 철조망과 마치 피 흘린 자욱과 같은 황토빛 대지의 선명한 이미지는 한반도의 슬픈 풍경입니다. 한반도 분단의 상징으로서 비무장지대를 그림책의 소재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비무장지대는 평화의 땅인가요 ?
비무장지대는 말 그대로 하면 비무장의 평화지대이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로 비무장지대가 아닌 중무장지대입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내에는 여전히 수백만 기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남과 북 양측이 그곳을 사이에 두고 첨단 군사 무기로 무장하고 첨예하게 대치 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동식물에게는 인간의 간섭을 덜 받는 공간을 제공하여, 비무장지대와 그 주변은 동식물의 낙원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인간사의 불행이 자연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하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비무장지대입니다.
이 책을 그리기 위해 비무장지대를 답사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
연천지역 민통선 지역에서 만났던 야생 두루미 가족의 모습, 영하 20도의 철원 토교저수지에서 만난 야생 기러기 떼가 비상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를 답사하면서 그곳의 풍경이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닌 듯한 기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이렇게 슬프기만 한데, 자연의 풍경은 어째서 이토록 아름답기만 한가?’ 그것은 모순과 역설의 이상한 경험이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화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뒤로 DMZ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그곳은 여전히 남북의 군사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남한과 북한, 그리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의 GP를 공개적으로 철수하고 끊어졌던 남북간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을 추진하는 등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70여 년이 넘게 이어진 남북분단의 시대를 끝내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 시대가 활짝 열릴 수 있도록,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바랍니다.
책에 보면 할아버지와 손자가 철책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북녘의 가족과 포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날이 곧 오리라고 생각하시나요?
헤어진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고 모든 사람들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평화로운 세상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북한, 해외동포를 포함한 8000만 한민족이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은 조심스럽기만 한 평화입니다. 더 이상 전쟁의 위협이 없는 세상과 ‘되돌이킬 수 없는 완성된 평화’를 위하여 많은 이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한 권의 그림책이 당장 세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래서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그런 마음과 마음이 모여서 세상을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가자 지구의 장벽 같은 정치적 장벽을 포함해 사람들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대화와 화해가 진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현실의 장벽이라는 것은 결국 그것을 체념하고 절망한 마음들이 뭉쳐서 더욱 견고해지게 됩니다. 역으로 현실의 장벽을 해체하려 한다면 우선 마음속의 장벽부터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장벽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듯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장벽은, 이 역시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하루 아침에라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선 내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난 뒤에는 무엇이라도 좋으니 현실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작은 행동을 시작하세요. 한국 속담에 ‘낙숫물이 댓돌 뚫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붕에서 한 방울씩 계속 떨어지는 빗물이 돌에 구멍을 내고 마침내 뚫어버린다는 뜻입니다. 평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랜 세월 끝까지 노력한다면, 마침내 현실의 장벽 또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인터뷰 진행: 원충연(2019년 1월 3일)
이억배 작가의 그림, 저자의 허락을 받고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