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연말연시는 최고의 시기였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기간이 영적인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셨다.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모여 여유를 가지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돌아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잘못들을 바로 잡고 상처들을 치유할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시간이지 않은가? 서로 평화를 이루고 깨끗한 양심과 자유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한 해를 마감하면서 아내와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풍성히 주셨는지 보게 된다.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모든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 아내가 암 투병을 하고 나 역시 심장질환으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며 올 한 해는 각별히 험난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들도 인해 삶은 더 깊어지고 이전보다 더욱 사무쳐간다.
또한 앞으로 전진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새해 결심을 다지고 쉽게 잊어버리게 되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 가족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위한 새해의 소망과 기도는 무엇인가? 시리아 난민과 전쟁과 허리케인, 지진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 2014년은 어떤 해가 될 것인가? 인간이 불러온 엄청난 고통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역사에 개입하는 하나님께 간구한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소서” 라고 바라는 간구는 더욱 우리의 마음에서 갈급하게 불타야 한다.
또 한 해를 보내며 보내야 할 1년과 다가오는 새해를 생각하는 이 시기는 나에게 더욱 중요해지고있다.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오면서 돌아보는 삶은 더 넓어져있고 풍성하게 채색되어 있다. 앞으로 내다볼수록 새로운 한 해 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는 영원의 빛 가운데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성경이 암시하듯이 영원이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끝없이 이어지는 걸 뜻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은 곧 끝이 난다. 영원은 새로운 삶을 뜻한다. 죽음의 파괴적인 힘에서 벗어나 고귀한 사랑이 통치하는 풍성한 삶을 새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얼마나 오래 사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가의 문제이다. 평화롭게 서로 사귀고 모든 것이 윤택한 그런 삶을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나라에 맞아들이길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 역시 지금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나라를 바라며 일해야 한다. 이런 삶의 태도야말로 ‘영원을 바라보며 사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 있지만 마음과 생각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그런 삶 말이다.
영원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땅이 아닌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을 뜻한다(마 6:19-20). 또한 영원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뜻이다(마 4:4).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뒤 아내와 나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종종 묻는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그 순간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이 죽음을 맞을 때 그가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잘 건너도록 곁에서 돕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하며 산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나이와 상관없는 질문이다. 젊음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시기에 속하지만, 젊은이들이 영원에 관심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젊음의 기쁨도 진정으로 완전해진다. 노년도 마찬가지이다. 죽을 운명만 생각하다가 우리가 영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노년은 고통과 외로움, 우울함에 짓눌리게 된다.
영원을 바라보며 살려면 바울이 말하는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이 없으면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믿음이 없으면 죽음을 상실과 슬픔으로 여기지만, 믿음이 있으면 죽음을 기쁨과 승리로 여긴다. 우리가 죽어야 비로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우리의 삶이 우리가 경험하고 만지고 보는 것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건 너무나도 제한된 삶이 될 것이다. 영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위대하다. 영원을 바라보며 살면, 우리는 바울이 말한 대로 이 세상에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진짜 세상을 보게 된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이 세상을 위해 지으셨다. 하지만 영원을 위해서도 지으셨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계획도 갖고 계신다. 영원을 바라보며 살면 육체에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죽음을 이길 기회를 얻는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이해하게 되고, 섬김과 사랑, 용서라는 그분의 길을 따를 힘이 생긴다. 그래서 우선은 죽음을,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삶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