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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out영적 각성운동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었던 1829년 무렵, 오하이오주에 있는 맨스필드에서 한 설교자가 청중들을 향해 도전의 말씀을 전하며 누군가를 찾았다. “지금 맨발로 천국을 향해 순례길을 걷고 계신 분이 어디에 있나요?”
“여기 있습니다.” 셔츠 대신에 커피 자루를 입고 있던 맨발의 한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그 사내의 이름은 바로 존 채프만(1774-1845)이었다. 그는 미국 개척시대에 살면서 가는 곳마다 많은 사과 농장을 일구고 천국의 복음소식을 전했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조니 애플시드(Johnny Appleseed)라 부르며 미국의 국민 영웅으로 여기게 된다. 채프만은 미국 서부지역으로 개척여행을 떠나면서 사과 농장 관리인으로 여러 지역들에 많은 과수원들을 만들고 경작하였다. 그의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세상을 뜰 무렵에는 사백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넓은 땅을 소유했지만 성공을 즐기지 않고 고되고 외로운 삶의 길을 끝까지 걸었다. 채프만은 꿀과 야생 딸기 그리고 우유와 옥수수 가루로 만든 음식들을 먹었고 이러한 그의 삶의 방식은 세례 요한을 생각나게 했다. 음식을 버리는 한 여인을 향해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선물을 버리는 것은 죄입니다.’ 라고 말했던 일화를 통해서도 채프만은 세례 요한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채프만은 친절한 사람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너무나 가난해서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과 묘목들을 무상으로 제공했으며, 어느 한겨울에는 서부로 여행 중인 한 가족에게 자신이 가진 유일한 신발 한 켤레를 거저 주었다. 심지어 뱀이나 곤충과 같은 동물들에게까지 친절을 베풀었고 이러한 그의 태도로 인해 여행하면서 만났던 미국의 인디언 원주민들은 그를 존경했다. 채프만이 가지고 있던 자연을 향한 경외심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깊었다. 당시 사람들은 과일 나무들이 잘 자라도록 좋은 나무에 있는 어린 가지를 잘라 튼튼한 나무 줄기에 접붙이는 작업들을 했는데, 채프만은 그러한 접붙임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벗어나는 죄로 여겼다. 그런데 그가 심은 나무에서 수확한 사과들은 먹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발효한 사과주스나 애플 브랜디(사과주를 증류시켜 만든 독한 술)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채프만은 항상 성경과 함께 윌리엄 블레이크나 랠프 에머슨과 같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엠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책들을 지니고 다녔다. 나그네들을 위한 숙소를 찾아가 여러 밤을 지내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자주 읽어 주기도 했다. 채프만은 이타적인 친절을 베풂으로 진정으로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볼 때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여질 수 있지만 거칠고 고된 그의 삶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채프만이 젊은 시절 말에게 머리를 차인 적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들먹거리며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지만, 아이들은 채프만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기를 학수고대할 만큼 그를 좋아했다. 채프만은 여자 아이들을 위해서 리본을 가지고 다녔고, 남자 아이들을 위해서는 불타는 숯불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채프만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들이 워낙 드물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그를 전설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니 애플시드는 원래의 존 채프만과는 많은 부분이 다르게 그려졌다. 사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더 굉장하다. 1881년 오하이오주의 한 역사가였던 힐(N. N. Hill)은 “지난 백 년 동안 채프만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은 없었다.” 라고 평가했다.
존 채프만의 실제적인 삶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은 하워드 민스(Howard Means)가 지은 Johnny Appleseed: The Man, the Myth, the American Story (Simon and Schuster, 2011)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하워드 민스의 연구의 바탕 아래 쓰여졌습니다.